상대부의 녹을 받았다고 한다. 또 순경도 직하지학의 장로였다.
『한서』의「예문지」에는, 그 제자의 파별을 유가·도가·음양가·법가·명가·묵가·종횡가·잡가·농가·소설가로 나누어 10가로 분류하였다. 공자·맹자·순자 등의 유가는 효제·인의·예를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사상과 학문을 펼쳤던 것을 나타낸다. 《한서》의 <예문지> 에서는, 제자백가를 유가·도가·음양가·법가·명가·묵가·종횡가·잡가·농가 등 9류에다가 또 소설가를 부록으로 한 것으로 분류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는 <한서>의 내용에만 기초하다보니 병가와 같은 주요 사상에 대해서도 누락이 있었
지역에서 일어난 제후들은 자국을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전국의 학자들을 불러모았고 그들 모두는 시국의 상황에 따라 주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데 학문의 목적을 두었다. 그 시대에 나타난 수많은 학파들을 제자백가라고 하며 출현배경에서도 보이듯이 그들의 사상은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제자약이란 이름으로 묶어 놓았으며 ≪수서·경적지≫에는 아예 자부라는 이름으로 묶어 놓았다. 이리하여 자서(제자서)는 바야흐로 하나의 독립된 분야로 발돋움하게 되었으며「경」·「사」와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제자라는 용어 뒤에 감초 격으로 달라붙는 백가에 대
사상의 다양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국가권력이 강력하면 사상과 학문을 통제하기 쉬워 다양한 사상의 발달은 어려운 법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각 파의 학설이 쉽게 용인되었으며, 또 사실상 이것들을 모두 하나로 통일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정치적 혼란이 도리어
사상은 유가에 의해 대표되는 인치주의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되어 객관적인 기준에 의한 법의 우위를 강조하며 변법운동을 추진하였다. 법치가 완전하게 실현된 사회는 이미 윤리가 구현된 사회이며, 인의를 정치강령으로 삼는 것은 군주의 주관적이고 비현실적인 정치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경(
배경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수공업과 농업 기술의 발전, 상업의 발전에 따라 사상가들을 지원하는데 충분한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철학사상으로는 유가, 도가 ,법가, 묵가, 명가, 음양가, 종횡가, 잡가, 농가, 소설가 등이 있지만, 큰 맥락을 띤 유가, 도가, 법가, 묵가, 명
Ⅰ.서론
보통 동서양의 고대문화를 비교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처럼 과거에도 서양의 문화는 세련되고 동양의 문화는 시대에 뒤져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한 비교는 현재의 서양의 문화를 기준으로 그리고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한 비교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
유가사상가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우리의 인간성을 정의하는 것은 우리의 공감, 타인존중의 정서, 타인을 위하는 도덕적 능력들인 것이다. 유가사상은 동정은 단순한 본능이나 직관적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도덕적 덕이라는 동시대 여성주의자들의 견해를 지지한다. 그것은 공유된 인도성의 감각, 타